누군가는 추억이 아무런 힘이 없다고 했다.

♬MOMENTS/#COMMENTS 2015. 5. 20.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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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되면 으레 동창회가 열린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의 친구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친구들의 최근 근황으로 시작해,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부터 잊혀졌던 반 친구들의 이야기까지 하나하나 

곱씹어보며 추억에 잠긴다. 내 기억과 친구들의 기억이 함께 어우러져 그 시절의 그림들이 떠오르기 시작하고,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는 시간이다. 



졸업하고서도 이렇게 추억을 서로 나눌 수 있는 건, 좋든 나쁘든 간에 그 시절의 기억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친한 친구가 한 명이었든, 여러 명이었든 모두 옛날을 회상하는 건 매한가지다.



누군가는 추억이 아무런 힘이 없다고 말했다. 회상을 끝내고 뒤돌아서면 연기처럼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연히 스쳐 지나간 장면에서 그리웠던 기억을 떠올리거나 슬펐던 일을 연상하게 되는 건 실로 대단한 일이다. 



정말 잊고 싶은 순간이 몇 년 후라도 너무 쉽게 떠오르곤 할 때마다, 지난 일기장을 뒤적이다 헤어진 남자친구와의 흔적을 

읽고 마치 엊그제 헤어진 것 같이 가슴이 뻐근해오는 것을 느낄 때마다, 기억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실감한다.



물론 망각 때문에 완벽한 기억을 가질 순 없다 하더라도, 뇌리에 박힌 기억들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첫사랑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의 향수 냄새는 기억하고 있기도 한다. 

낯선 여자에게서 익숙한 향기를 느꼈다는 광고 카피도 있지 않은가.



이런 것들이 끊임없이 뇌리에 박혀 있는데, 내가 자각하지 못하는 무의식 속에선 대체 얼마나 많은 추억의 흔적들이 

남아있는 것일까.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도 내 무의식에선 끊임없이 옛 시간들을 되짚고 있는지도 모른다.



불혹의 나이가 되면 얼굴에 그 사람의 인생이 드러난다고들 한다. 

살아온 삶의 시간들이 축적돼 그대로 얼굴로 나타나는 것일까. 

그래서 잊고 싶은 사람도, 끊고 싶은 인연도 내 마음대로 마무리 할 수 없는 것인가 보다. 

이 사람과의 내 인연은 여기까지라고 마무리짓고 싶어도, 

이미 내 기억 속에는 끊임없이 얽히고 설켜 단단히 뿌리를 내리곤 다시 자랄 그 날만 기다리고 있기에.



과히 즐거운 일은 아니다. 컴퓨터처럼 삭제, 포맷이 쉬우면 참 편리할 테다. 

잊힌 기억들을 끊임없이 반추해 다시 기억해내고야, 즐거운 기억이 아니었던 것을 알고 왜 어렵사리 기억해냈는지 

후회하기도 한다. 추억 속의 사람을 찾기 위해 SNS를 하루 종일 뒤져본 경험에 모두들 공감하지 않는가.



마치 나의 과거들은 포트폴리오처럼 정리되고 싶은 양 그렇게 내 안에 남아 있나 보다. 

내가 잊고 싶어하는 인연들과의 기억을 마무리 짓기란 불가능한 것일까. 물질적인 흔적들을 모두 없앤다 해도

내 머리 곳곳에, 몸 구석구석에 남아있는 이 기억들과의 이별은 기억 상실 후에나 가능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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